법원, “기피시설 아니고, 공공복리 반하지 않아”
신범수 기자ㅣ 기사입력 2018/06/04 [10:10]
장례문화 발전을 위해 업계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례 관련 시설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관련법이 개정되며 시설이 현대화 되고, 프리미엄을 표방한 장례식장이 등장하면서 단순 장례식장이 아닌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음에도 현재 전국의 각 시·도에서는 장례식장 건립을 반대하는 시위와 각종 법적 분쟁이 줄을 잇고 있다.
“응급차만 봐도 기겁을 하는데, 아이들이 등교하다가 영구차를 보면 얼마나 놀라겠어요” 최근 청주시 서원구 청남로 남성초 정문 앞에는 ‘장례식장 설치 결사반대’ ‘학교 앞 장례식장 철회를 끝까지’ 등 내용의 플래카드가 여럿 걸려 있다. 이 학교와 인근 남성유치원, 남성중, 충북고 등 4개교 동문 등이 모인 장례식장 저지대책위원회가 걸어 놓은 것이다.
등·하교시간 플래카드를 보는 학부모들도 “어떻게 학교 앞에 장례식장을 세우려 하는지 모르겠다”며 격앙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남성초등학교 옆 병원에 장례식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인근 주민·학부모들이 격렬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지난 4월 22일 남성초와 인근 주민 등에 따르면 남성초 옆의 한 건물에 장례식장 설립이 추진 중이다. 지하 1층에서 지상 10층 규모의 이 건물에는 요양원과 재활병원이 입주해 있으며, 앞서 2013년 한 차례 장례식장 설치를 추진했다가 인근 주민들의 반대로 개설이 무산된 곳이다.
장례식장 설립이 가시화되자 남성초는 물론 인근 남성유치원, 남성중, 충북고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지난 4월 17일 이들 4개교 교장과 총동문회,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회, 아버지회 대표가 모여 ‘장례식장 저지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장례식장 입주 반대를 결의했으며, 앞으로 서명 운동 등 본격적인 반대 활동을 예고하고 있다.
주민들은 ▲교통량 증가 ▲보행자 통행 위협 ▲시신운구와 곡소리 등 주변환경 타격 ▲주민·학생의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반대 이유로 들고 있다. 특히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남성초와남성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내는 학부모들의 반대 목소리가 크다.
해당 장례식장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장례식장을 기피·혐오시설로 볼 수 없고, 2016년 의료법 개정을 통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어 설립에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포항시청, “장례식장 들어서면 심각한 피해 발생, 항소하겠다”
청주에 이어 포항에서도 장례식장 설치에 대해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남구 대잠사거리 인근 장례식장 건축과 관련해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포항시청까지 나서 장례식장 건축을 불허했지만 법원이 장례식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진 것이다.
장례식장 인근의 아파트 입주민과 입주예정자 등 30여명이 대잠사거리 인근에 장례식장이 절대 건축돼서는 안된다며 지난 4월 23일 건축 예정 부지 앞에서 집회를 가졌다.
집회 참가자들은 “혐오시설인 장례식장이 인구 밀집지역과 가까운 곳에 건축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장례식장이 들어서면 많은 주민들이 피해를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잠사거리는 철강공단, 경주 등과 직접 연결되는 시가지 관문인데 장례식장이 들어서면 심각한 교통체증이 예상되고 인근은 아파트 단지와 공원 등이 있어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포항시가 장례식장 건축을 불허했는데도 업체는 계속 추진하고 있어 주민들이 계속 반대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한편, 포항시는 지난해 1월 대잠사거리 인근 장례식장 건축을 불허했다. 포항시 도시·군 계획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정면 배치되고 대잠사거리 인근의 인구 감소 및 상권 축소를 이유로 들었다. 심각한 교통체증 발생도 불허 이유에 포함됐다. 하지만 장례식장을 건축하려는 업체가 행정소송을 냈고 포항시가 1심에서 패소했다. 포항시가 이에 불복,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포항시청 관계자는 “이 일대 장례식장이 들어서면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항소심에서 승소하기 위해 여러 자료 등을 제출해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원, “신사우동 장례식장 건립 불허 처분은 위법”
전국에서 장례식장 건립을 반대하며 법적 분쟁을 이어가는 도중 춘천시 신사우동 도새마을회관 자리에 장례식장을 건립하는 것에 대한 춘천시의 불허 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이 연이어 나와 귀추가 주목된다.
1·2심 판결에서 모두 패소한 춘천시는 대법원 상고까지 검토하고 있다. 장례식장 건립을 둘러싼 1년 9개월여 간의 법정다툼은 건물 소유자인 도새마을회가 2016년 6월 기존 예식장을 폐업한 뒤 장례식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시에 용도변경허가신청을 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시는 주민들의 반대와 민원조정위원회 심의 결과 등을 이유로 용도 변경을 불허 처분했다. 이에 도새마을회는 곧바로 거부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지난해 10월 최종 선고된 1심에서 재판부는 시가 불허 사유로 제시한 ‘주거환경과 교육환경 침해’, ‘기존 장례식장 수요 충족’ 등에 대해 모두 이유 없다며 원고(도 새마을회)의 손을 들어 줬다.
판결문에는 “장례식장을 기피시설로 보기 어렵고 용도 변경을 허가하는 것이 현저히 공공복리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적시했다. 이에 시가 불복, 항소했으나 판결은 뒤집히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일부 학생이 장례식장 앞 도로를 통과한다고 해 올바른 가치관 형성과 정서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시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신사우동 장례식장 건립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해당 지역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반대운동 당시 주민들 7000여명의 서명이 담긴 반대 서명부를 시에 전달했었다. 시 관계자는 “상고를 통해 대법원의 판단을 물을지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장례식장 꼭 필요한 시설…무조건 반대 지양해야
상조업계, 이미지 개선 위해 복합문화공간 조성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장례식장이 새로 지어지거나 증축 또는 개축을 할 경우 어김없이 주변 주민들과의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장례식장을 혐오시설로 보고 무조건적인 반대를 하고, 법원에 집행 정지를 신청하거나 관할 지자체에 강력히 항의 하는 등 장례식장 건립을 어렵게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고령화 사회를 맞아 장례식장 확충이 필연적인 현 시점에서 장례식장에 대한 지역민들의 저조한 인식은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장례식장이 주거지역 또는 도심한복판에 입지해 접근성을 높인 것처럼 우리도 이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는 “장례식장은 삶과 죽음이 함께 어우러진 공간이다”며 “기피시설이나 혐오시설이 아닌 문화, 사회복지, 경제 등 다방면으로 사회의 한축을 담당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상조업계에서는 장례식장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 주민친화적 시설로 조성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장례식장 주변 지역 주민과의 마찰을 효과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추모공원형태의 장례식장을 늘려 나감으로써 기존 장례식장에서 느낄 수 있었던 어두운 분위기를 지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 프리드라이프에서 오픈한 쉴낙원 장례식장의 경우 기존의 어두운 이미지에서 벗어나는데 주력했다.
협소하고 노후화 되었던 기존시설을 빛과 음악이 흐르는 아름다운 문화공간이자, 현대식 설비를 갖춘 프리미엄 장례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또한 장례박물관과 장례용품 전시실, 장례관련 체험이 가능한 교육공간 등 다채로운 문화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다양한 전통 장례 유물을 전시한 장례문화박물관은 청소년 및 지역 주민들에게 훌륭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된다.
보람상조 장례식장 역시 장례식장의 이미지를 제고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창원경상대학교병원 장례식장은현대적이고 쾌적한 실내 인테리어와 넓은 주차시설을 겸비한 최신식 시설이 강점이다. 전반적으로 격조 높은 분위기와 경건함이 부각됐으며 영결식장과 접객실을 보다 고급스럽게 설계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보람여수장례식장은 100평 이상 규모의 VIP 분향실을 비롯, 유가족의 지친 몸과 마음을 위해 프리미엄 객실과 편백 사우나 등 안락한 유족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이는 오랜 호텔 운영 경험을 갖춘 보람상조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장례식장과 호텔이 합쳐진 새로운 개념의 장례식장으로서 지역에서도 손꼽히는 시설로 정평이 나 있다.
업계뿐만 아니라 지자체에서도 장례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체육공원 등 주민 편의시설 설치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또한 장례식장의 다양한 콘텐츠 개발을 통해 장례식장의 이미지를 문화적 안식처로 바꾸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는 “장례식장은 종합장례 서비스를 제공하는 복지시설이다”며, “장례식장을 주민 친화적, 사회친화적인 시설로 인식하고,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원 판결에 따라 장례식장은 혐오시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죽음을 도외시하는 사회분위기에 대해 복수의 업계 종사자들은 “이제 막 장례문화가 걸음마를 시작한 시점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나쁘게 볼 수만은 없다”며 “점진적인 인식 변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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